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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기의 연설

세기의 명 연설가, 소크라테스 (Socrates) 의 변론

by 일탈러 2022. 1. 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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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 이제 떠날 시간이 왔습니다. 나는 죽으러, 여러분은 살러 갑니다. 어느 쪽이 더 나은가는 오직 신만이 아시겠지요."

The hour of departure has arrived and we go our ways.

I go to die - and you to live. Which is better, God only Knows.

기원전 399년, 그리스 아테네, 플라톤의 "변명" 변론

 

 

기원전으로 돌아가야 합니다. 469년에 태어난 것으로 추정되는 소크라테스는 그리스 철학자로서,

서양철학에서는 가히 성인으로 추앙 받고 있씁니다. 그가 글로 된 기록을 남기지 않았다는 점을 고려하면 매우 놀라울 일이라 할 수 있씁니다.

그는 다른 사람들의 설명, 주로 그의 제자였던 플라톤(Plato)의 설명을 통해서만 알려져 있는 수수께끼 같은 인물입니다.

"소크라테스의 변명" 역시 소크라테스가 '젊은이들을 타락시키고, 신에 대한 숭배를 거부하고, 새로운 신을 만들었다' 는 비난에 맞서 자신을 변호한 연설을 플라톤이 기록한 것입니다.

 소크라테스는 스파르타와 치른 펠로폰네소스 전쟁에 참전했지만, 이후 평화와 비폭력, 철학과 농증의 힘을 믿는 사람이 되었습니다.

그는 인생의 말년을 아테네의 공공장소에서 보냈다고 전해진다고 하는데, 아테네 시민들을 철학적 토론에 참여시키고 그들에게 자기분석을 해보라고 설득했다고 합니다.

소크라테스의 사상과 가르침의 중심 주제가 된 것은 바로 이러한 자기 분석과 문제해부였씁니다.

소크라테스 식 문답법은 스승이 지식을 직접 가르쳐주는 것이 아니라 계속 질문을 던지고, 이에 답하는 학습과 토론 방식을 말합니다.

제자는 심도 있는 문답을 주고 받으며 자신이 가진 지식의 한계를 깨닫고, 답을 찾아가는 것입니다.

 

소크라테스는 70세의 나이에 아테네에 대항한 이론을 펴고 젋은이들을 타락시킨다는 혐의로 고발당했었습니다. 이 고발사건은 그가 영향력을 갖춘 지식인으로서 문제를 일으킬 소지가 있는 한편, 여러 사람의 시기 질투의 대상이 되었기 때문에 발생한듯 보여집니다. 기소자들의 승리로 재판이 끝나자, 사람들은 그가 아테네를 떠날 것이라 예상했었습니다. 그러나 기원전 399년 경, 그를 고발했떤 사람들과 아테네 시민들에게 큰 충격을 안기고, 그는 독약을 먹고 극단적 선택을 함으로써 철학적 순교를 선택했습니다.

 

진실을 역설하라.

소크라테스는 배심원들에게 자신의 웅변술이 아니라 진실로만 판단해달라고 요청하며, 중요한 것은 진실이라고 말했습니다.

그는 평법한 말투로 솔직하게 이야기하며, 자신의 화려한 웅변술로 배심원의 판단력을 흐리게 하지 않겠노라고 주장했따고 합니다.

 

연설의 결말을 질질 끌어서는 안됩니다.

연설을 지나친 변명으로 끝내거나 용서나 동정을 얻어내려고 애쓰지 않아야 합니다. 또한 청중의 찬사를 받으려고 다른 교활한 수단을 동원하는 일 없이 끝나야 합니다.

 

소크라테스는 다음과 같은 유명한 표현으로 "변명" 을 끝냈습니다.

"꿈조차 방해하지 못하는 깊은 잠에 빠졌다고 한다면, 죽음은 말로 다 할 수 어도 없는 이익이 될 것입니다.(중략) 만약 죽음이 이러하다면, 나는 죽는 것이 낫다고 말할 것입니다. 영원은 마치 하룻밤에 불과할 테니까요. 그러나 죽음이 다른 곳으로의 여행이라면, 그리고 사람들이 말하는 것처럼 죽은 자들이 모두 거기서 살고 있다면? 오! 나의 친구와 재판관 여러분, 이보다 좋은 일이 어디 있겠습니까? 순례자가 지하세계에 도착해 이 세상에서 재판고나을 자처한느 사람들로부터 구원을 받아, 그곳에서 진정한 재판관을 만나게 된다면, (중략) 오르페우스와 무사이오스, 헤시오도스와, 호메로스 를 만나 대화를 나눌 수 있다면 어떤 대가인들 치르지 않겠습니까? (중략) 자, 이제 떠날 시간이 왔습니다. 나는 죽으러, 여러분은 살러 갑니다. 어느쪽이 더 나은가는 오직 신만이 아시겠지요."

 

2001년 10월 뉴스위크 지의 기사에서 스티브 잡스는 이렇게 말했습니다. "소크라테스와 오후를 보낼 수 있다면 내 기술 전부와 맞바꾸겠다."

역사를 통틀어 소크라테스가 교육과 철학, 사상 전반에 미친 영향력은 엄청날 것입니다. 그의 뛰어난 제자, 플라톤은 기원전 385년에 아카데미를 세워 다른 철학자들이 연구하고 해결할 문제를 제기 햇씁니다. 플라톤의 애 제자, 아리스토텔레스는 알렉산더 대왕의 스승이 되었고, 아리스토텔레스는 기원전 33년에 직접 리시움이라는 학교를 세웠습니다. 소크라테스가 없었다면 이러한 발전은 이루어지지 않았을 것입니다.

 

지금도 소크라테스의 토론과 문답 방신은 복잡한 주제에 문제를 제기 할 때 널리 활용되곤 합니다. 또한 상세한 법률석, 의학적, 철학적 문제들을 토론하는 방식으로도 이용되며, 심리치료의 형태로도 활용되고 있습니다. 균형감과 진실이 핵심적인 동인이 되는 논쟁과 논증에서 가장 현대적인 부분들도 소크라테스의 접근방식과 사사의 직접적인 결과물이라 할 수 있습니다. 

그토록 그의 유산이 얼마나 대단한 것인지는 짐작가고도 남을 일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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