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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기의 연설

위대한 천문학자 갈릴레오 갈릴레이 의 서약 Galileo Galilei

by 일탈러 2022. 1. 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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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태양이 세상의 중심이고, 움직이지 않는다는 잘못된 생각과, 지구가 세상의 중심이 아니고, 움직인다는 잘못된 생각을 모두 버려야 합니다. 그리고 말로든 글로든 어떤 식으로든 이러한 잘못된 학설을 주장하거나, 변호하거나, 가르치지 않겠습니다.

I must altogether abandon the false opinion that the sun is the center

of the world and immovable and that the earth is not the centere of the world

and moves and that i must not hold, defend or teach in any way

whatsoever, verbally or in writing, the said false doctrine.

1633년 6월 22일, 갈릴레오의 철회 서약

갈릴레오 갈릴레이는 1564년 2월 15일에 이탈리아에서 태어나 1642년 1월 8일에 세상을 떠났습니다. 그는 19세의 어린 나이에 진자의 등시성을 발견했고, 22세에는 정수, 저울을 발명했으며, 25세에는 피사 대학교에서 처음으로 교수직을 제의받았었씁니다. 오늘날 갈릴레이는 천체망원경의 발명자로만 기억되고 있을지 몰라도, 당시에는 유럽 전체에서 발명가이자 물리학자, 뛰어난 교수로서 남부럽지 않은 명성을 누렸었씁니다.

그러나 1633년, '행성들은 지구가 아니라 태양을 중심으로 돌고 있다'는 천문학적이고 철학적인 그의 믿음은 종교와 정면으로 충돌했고, 결국 그는 이단아로 몰려 재판을 받게 되었습니다. 물론 그의 이론이 결국엔 옳았다고 입증되었지만, 당시 그는 자신의 생각을 공개적으로 철회해야만 했습니다.

"나는 해결책을 전혀 제시하지도 않으면서, 이미 비난받은 이 새로운 학설을 다루고 그 학설을 뒷받침하는 논거들을 책으로 간행했습니다. 바로 이 때문에 나는 종교 재판소에서 이단자로 의심된다고 선언되었습니다. 나는 움직이지 않는 태양이 세상의 중심이며, 지구는 세상의 중심이 아니라 움직이고 있다고 주장하고 믿었던 것입니다."

아무리 힘든 상황에서도 기품을 지켜야 합니다.

갈릴레이는 자신의 생각을 공개적으로 철회할 것을 요구받았는데, 그에겐 저주와도 같은 명령이었을 것이 분명했습니다. 그러나 재판장에 선 그는 기품을 잃지 않았습니다. 그는 교회가 자신에게 아무런 선택권도 주지 않았지만, 역사과 과학은 자신의 견해가 옳았음을 입증해줄 것이라 믿었습니다. 그는 목숨을 부지해야 한다는 점을 알고 있었고, 그는 자존심을 지키며 그렇게 했습니다.

자신의 주장을 철회하는 대가로 그는 죽을 때까지 가택연금에 처해지는 것으로 감형받았습니다. 물론 연구와 강의를 위해 돌아다니는 데 익숙해있던 사람에게는 여전히 견디기 힘든 처벌이었으리라. 물의를 일으키기 충분했던 1630년 발표작<두 우주체계에 관한 대화>는 금서로 규정되었고, 그기 이후에 발표할 저서를 포함해 그의 저작물은 모두 출간이 금지되었습니다.

 

갈릴레이의 재판은 종교와 과학이 각자의 길을 걷게 된 기념비적인 순간을 의미합니다. 1979년, 교황 요한 바오로 2세가 갈릴레이에 대한 유죄판결을 번복할 것을 요구하면서 그에 대한 재조사가 시작되었습니다. 마침내 1992년 10월, 교황청 위원회는 자신들의 과오를 인정했습니다. 바티칸의 기록에 따르면 그 재판에서 주장된 것처럼 갈릴레이는 지동설에 대해 글을 쓰거나, 가르치지 못하게 제지당하지는 않았다고 합니다. 요한 바오로 2세는 갈릴레의 재판을 포함해 지난 2,000년 동안 교회가 저지른 모든 과오에 대해 공식 사과문을 발표했습니다.

 

물리학에서 갈릴레이는 떨어지는 물체와 투사물의 운동에 관한 법칙을 발견한 인물로 기억됩니다. 또한 천문학에서는 망원경을 이용해 관측을 시도한 선구적인 학자로 알려져 있씁니다. 그는 천체망원경을 통해 태양의 흑점과 울퉁불퉁한 달 표면, 목성의 위성들과 금성의 차고 기움을 발견해냈습니다. 이러한 업적을 기려 목성 궤도에 진입한 최초의 우주선과 현재 추진중인 범지구위성항법 시스템에 모두 갈릴레이의 이름이 붙어 있습니다. 그리고 무엇보다도 그는 태양이 중심이라는 니콜라우스 코페르니쿠스의 우주체계를 지지하고 강화했던 학자로 기억됩니다. 또한 그는 과학과 지식을 종교의 속박으로부터 멋어나게 하는 데 기여한 중요한 인물이기도 합니다.

 

전해오는 이야기에 따르면, 철회 석약을 끝내고 아픈 무릎을 딛고 일어서던 갈릴레이는 혼잣말로 이렇게 중얼거렸다고 합니다. "그래도 지구는 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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