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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기의 연설

세기의 명 연설 로버트 케네디(Robert F. Kennedy)의 마틴루터 킹 목사 암살에 관한 연설

by 일탈러 2022. 1. 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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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에 필요한 것은 분열이 아닙니다. 미국에 필요한 것은 증오가 아닙니다. 미국에 필요한 것은 폭력이나 무법이 아니라 사랑과 지혜, 그리고 연민입니다.

What we need in the United States is not division; what we need int the United

States is not hatred; what we need in the United States is not violence and

lawlessness, but love and wisdom and compassion.

로버트 케네디는 1925년 11월 20일에 태어났습니다. 그는 존F. 케네디의 대통령의 동생으로, 그 역시 정치인이고 미국의 대통령이 되었을지도 모르는 운명을 타고난 사람이었습니다.

케네디는 1968년, 민주당 대선후보지명 유세 중에 마틴 루터 킹 목사의 암살사건에 대해 연설하게 되었씁니다. 적절한 어휘와 확고한 말투로 전달된 그의 연설은 단순하면서도 감동적이고, 강력했습니다. 그는 이 연설을 한 지 고작 두 달 뒤인 1968년 6월 6일 아이러니하게도 그의 형과 킹목사처럼 저격당해 삶을 마감했습니다.

 

노련한 연설가의 경우, 즉석에서 얻은 가공하지 않은 정보로 최고의 연설을 만들어내기도 합니다.

로버트 케네디는 즉석에서 정보를 얻어 연설 직전에 원고를 준비했습니다. 이렇게 준비되었음에도 불구하고, 그의 연설은 매우 훌륭했습니다. 하지만 그가 연설을 숱하게 경험했다는 점을 감안한다면, 실제로 그의 원고는 짧은 시간 동안 준비된 것이 아니라고 말 할 수도 있습니다. 그는 킹 목사의 명성과 그가 흑인들에게 심어준 용기에 대해 잘 알고 있었습니다.

 

사실을 직시하고 솔직하게 드러내야 합니다.

로버트 케네디는 킹 목사의 죽음을 청중에게 최초로 알린 사람이었습니다. 그가 소식을 전하자 놀란 사람들은 곧 비명을 지르고 통곡하기도 했습니다. 마틴 루터 킹 목사의 죽음은 위대한 지도자이자, 많은 사람들의 마음속에 벗으로 자리 잡고 있던 한 사람을 잃은 사건이었습니다.

당시 경찰은 범행 용의자가 백인이라는 사실이 드러날 경우 폭등이 발생할 것도 염려했습니다. 케네디 역시 사람들이 분노할 것을 예상하고 있었지만 사실을 외면하지 않고 솔직히 밝혔습니다.그는 청중의 이러한 분노를 마음속으로부터 깊이 이해했고, 그렇기 때문에 두려움 없이 그렇게 말할 수 있었습니다. 근느 자신의 형이 저격당했을 때와 똑같은 분노와 절망감을 느꼈다고 고백하기도 했습니다. 그의 연설은 진실했으며, 결코 생색을 내거나 비굴하지 않았습니다. 그는 마치 자신이 군중 속의 한 사람인 것처럼 이야기 했습니다. 이러한 그의 연설은 진심에서 우러난 것이었지만, 한편으로는 노련한 연설가의 영리한 전술이기도 합니다.

청중이 상황의 실체를 파악하고 있다면, 절제된 표현이 좋습니다.

그날밤, 케네디는 이렇게 말했습니다. "만약 그런 부당한 행위 때문에 모든 백인에게 증오와 불신을 품으려는 흑인들이 있다면, 저는 저 역시 똑같은 감정을 느낄 것이라고 말할 수 있을 뿐입니다. 제 가족의 한 사람도 백인에게 죽임을 당했습니다. 우리는 서로 이해하고 이 어려운 시기를 헤쳐 나가도록 함께 노력해야 합니다."

일부 비평가들은 그의 연설을 미국 역사상 최고의 연설 중 하나라고 평합니다. 그 연설은 짧고 겸손했지만, 그날 밤에만 한정된 의미를 지닌 것은 아니었습니다. "미국에 필요한 것은 분열이 아닙니다. 미국에 필요한 것은 증오가 아닙니다. 미국에 필요한 것은 폭력이나 무법이 아니러 서로에 대한 사랑과 지혜, 그리고 연민입니다. 백인이든 흑인이든, 여전히 이 나라에서 힘든 삶을 사는 사람들에게 정의를 안겨주려는 생각입니다."

 

케네디는 침참하게 연설을 이끌어갔습니다. 그는 그 사건이 얼마나 심각한 사안인지 알고 있었습니다. 그는 혼란과 비탄에 빠진 청중과 유대감을 형성했습니다. 연설은 평등, 불공평, 국가 분열이라는 주제들로 채워졌고, 케네디는 킹 목사가 대표하는 모든 것에 경의를 표하려 노력했으며, 자신의 목표와 희망이 킹 목사와 같다고 설명했습니다. 그는 연설을 통해 백인 정치인도 공명정대할 수 있고, 킹 목사 같은 훌륭한 흑인과 동일한 목표를 이해하고 공유할 수 있다는 의식을 심어주었씁니다.

근느 인종 간의 정의를 논증의 버킴목으로 삼았습니다. 그는 젊은이들과 소통할 수 있는 감각의 소유자이기도 했는데, 당시 미국의 젊은 층은 인종 통합의 필요성을 인지하기 시작한 주요 계층이기도 했습니다.

그러나 케네디는 백악관의 주인이 되는 꿈을 실현하려던 중에 너무나도 비극적으로 생을 마감하고 말았습니다. 에드워드 케네디 상원의원은 조지 버나드 쇼의 글을 인용하고 고인이 된 자신의 형, 로버트를 기렸습니다. "어떤 사람들은 현상을 있는 그대로 보며 '왜 그렇지?' 라고 말하지만, 저는 예전에 결코 없었던 무언가를 꿈꾸며 이렇게 말합니다. '왜 안 되겠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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